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血淚記錄《恨中錄》, 惠慶宮洪氏2部
2022/06/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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血淚記錄恨中錄, 惠慶宮洪氏2部(YouTube 影片下方的說明)
 
‘한국사 傳’에서는 조선시대 궁중문학의 백미로 손꼽히는 ‘한중록’의 저자이자 뒤주에 갇혀 죽어간 사도세자의 부인이었던 혜경궁 홍씨의 파란만장한 삶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在《韓國史傳》中,將分兩次介紹朝鮮時代宮中文學的佼佼者《恨中錄》的作者、被關押在米櫃後死亡的思悼世子的夫人惠慶宮洪氏波瀾壯闊的人生。 
 
- 정조 즉위 후 맞이하게 된 혜경궁 홍씨의 행복
어머니 혜경궁에 대한 효심이 남다른 정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그녀의 인생에도 다시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서기 1795년. 정조와 혜경궁, 그리고 그녀의 두 딸이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으로 원행을 떠난다. 사도세자의 죽음 이후 처음으로 혜경궁의 온 식구가 함께한 이 행차는 혜경궁의 환갑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마침내 고통의 세월이 지나고 평화가 찾아온 듯했다. 
이것은 혜경궁이 살아온 한스러운 생애의 보상이었다.
 
- 正祖即位後迎來的惠慶宮洪氏的幸福
隨著對母親惠慶宮的孝心與衆不同的正祖登上王位, 她的人生也開始重新開花.  
公元1795年,正祖和惠慶宮以及她的兩個女兒將遠行前往思悼世子的陵墓顯隆園. 思悼世子去世後, 惠慶宮全家首次一起出行, 是爲了慶祝惠慶宮的花甲. 痛苦的歲月終於過去了, 和平似乎已經到來.  
這是惠慶宮活下來的遺憾人生的補償。
 
- 계속된 혜경궁 홍씨의 위기
그러나, 위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정조 즉위 후 풍산 홍씨 일가는 외척세력으로 탄핵을 당한다. 혜경궁의 남편 사도세자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죄였다. 임금이 된 아들에게 정치적 걸림돌이 된 친정. 
혜경궁의 가슴은 타들어갔지만 아들 앞에서 어떠한 내색도 할 수 없었다. 
환갑잔치 후 정조는 갑자년(1804년)에 혜경궁 친정 식구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장밋빛 미래의 꿈은 아들 정조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산산조각났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손자 순조를 대신해 수렴청정에 나선 정순왕후는 풍산 홍씨 일가에 정치적 보복을 가하기 시작한다. 혜경궁은 더이상 의지할 곳이 없었다. 
절망의 끝에서 그녀가 기댈 곳은 붓끝 뿐이었다.
 
- 持續不斷的惠慶宮洪氏危機
但是, 危機並沒有消失. 正祖即位後, 豐山洪氏一家被彈劾爲外戚勢力. 其罪名是對惠慶宮的丈夫思悼世子的死亡負有責任. 給成爲國王的兒子成爲政治絆腳石的娘家。 
惠慶宮雖然心急如焚, 但在兒子面前卻沒有任何表示. 
花甲宴後, 正祖承諾要在甲子年(1804年)恢復惠慶宮娘家人的名譽. 但是玫瑰色的未來夢想因兒子正祖的突然死亡而支離破碎. 代替小小年紀登上王位的孫子純祖進行垂簾聽政的貞純王后開始對豐山洪氏一家進行政治報復. 惠慶宮再也沒有可依靠的人了. 
在絕望的盡頭, 她只能依靠筆尖.  
 
- 한 자마다 눈물을 흘리며 기록하니..
한중록의 또 다른 이름은 읍혈록. ‘피눈물의 기록’이란 뜻이다. 
자신의 말대로 한 자마다 눈물을 흘리며 쓴 이 기록은 그녀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80년 후 한중록을 읽은 고종은 그녀의 마지막 한을 풀어주었고 1899년 혜경궁은 마침내 황후로 추존된다.
 
- 每一個字都流著眼淚記錄著..
《恨中錄》的另一個名字是《泣血錄》. 意思是"血淚的記錄". 
正如她自己所說, 每字都流著眼淚寫的這一記錄比她活得更久. 80年後閱讀《恨中錄》的高宗解除了她的最後遺憾, 1899年惠慶宮最終被追封爲王后. 
 
한국사전 47회 – 피눈물의 기록 한중록, 혜경궁 홍씨 2부 (2008.6.28.방송)
 
韓國史傳第47集 – 血淚記錄恨中錄, 惠慶宮洪氏2部(2008.6.28.播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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